“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현재 더현대서울에는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에루샤(에르메스.
자연히 아버지를 따라 이사와 전학을 여러 번 다녔다.마침 하숙집과 가깝기도 해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유세장을 찾아갔다.
전남 광주(현 광주광역시)를 거쳐 여수로 갔다가 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그해 2월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에도 갔다.어쨌든 나는 정보부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자주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승객들의 차림도 남루했다.
변변한 가방도 없이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탔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진로를 바꿨다.나중에 자료를 보니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력에서 앞서 있었다.
수강신청을 할 때 필수 과목인 교련을 빠뜨렸다는 이유에서다.사망자가 두 명이 나오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나는 국가 발전에서 소외된 호남의 풍경을 마주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어쨌든 나는 정보부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